죽탄공(竹灘公) 하성즙(聖楫)27세손

공의 휘는 성즙(聖楫)이요 자는 제중(濟衆)이요 호는 죽탄(竹灘)이니, 취은 선생 형도(亨道)의 현손이다. 천성이 호학(好學)하고 재주가 뛰어난 바, 가정 학문을 이어받아 당세의 대현(大賢) 문하에서 배우셨다.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탐구하고 곁들여 모든 다른 글에도 통달하여 무릇 글을 저술함에 붓을 잡으면 그침이 없었고, 수정하지 않아도 천언만어(千言萬語)의 처음과 끝이 상응하여 빛나는 문장을 이루었으므로, 원근에서 글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늘 집안에 가득하였다. 세상이 어지러워짐에 일찍 과거를 폐하고 임천(林泉)에서 덕을 닦으신 바, 신진들로서 글 배우러 오는 이가 많았는데, 이끌어 가르치심이 자자하고 게으르지 않아서 충효 문학지사(忠孝文學之士)가 그 문하에서 많이 나왔다.

지례현감(知禮顯監) 소수중(蘇洙中)이 일찍이 뵙고 감탄하여 이르기를 「죽옹(竹翁)의 사람 대접함의 애연함이 봄바람과 같고, 엄연(儼然)하기가 높은 산과 같아서, 유도자(有道者)의 기상이 있소이다」하였다. 문집 두 권이 있었다. 손자 경조(慶朝)의 자는 달지(達之)요 호는 만은(晩隱)인데, 거동이 정대하고 총명함이 뛰어나서 학문을 돈독히 하고 행실에 힘쓰니, 글씨가 정건하고 문장이 세상에 드러난지라, 세상이 호남 시조(詩祖)라고 일컬었다.

어버이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여 모심에 곁을 떠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공양하셨으며 조금도 명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상주가 되어선 새벽과 저녁의 성묘에 큰 비와 찬 눈보라 속에서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으시니, 이웃 마을이 감화하여 스스로 길을 수리하여 다니는 데 편리하도록 하였다. 끼치신 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