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공(處士公) 하한시(河漢蓍)27세손

거창 북 삼봉산 아래 신지원에 있는 4척의 봉분은 고 처사 진양 하공의 잠드신 묘소이다. 휘는 한시(漢蓍)요 자는 윤언(潤彦)이니 고려조 목옹공 휘 자종(自宗)의 후예이시다. 그 이후의 중간 세계는 생략하고 증조의 휘는 세구(世龜)요 조의 휘는 석범(錫範)인데 증 형조참판이시고 아버님의 휘는 대은(大은)이시다 어머님은 남원양씨(南原梁氏) 동지중추 성해(成海)의 따님이다, 1783년 5월 14일에 출생하셨다.

어려서부터 천품이 넓고 크고 기우(氣宇)가 남다르게 준걸하셨다, 가범을 잘 잇고 육행(六行)을 익혀 갖추셨다. 임천(林泉)에 은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덕을 숭상하고 의를 행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실천하셨으며 농사에 힘을 쓰고 후예를 교훈하시면서 수신제가의 수범이 되는 도학군자로 자적 하셨다. 1859년 3월 19일에 별세하셨다. 마나님은 거창장씨(居昌章氏)사징(思徵)의 따님이다. 올바르고 화순하며 경건하여 부덕이 있으셨다. 1839년 12월 2일에 별세하시니 묘는 합봉이다, 3남을 두었는데 치룡(致龍) 재룡(在龍) 응룡(應龍)이다. 손자 이하는 많아서 다 기록못한다.

오호라 ! 한창려(韓昌黎)가 말하기를「조정에 벼슬하지 못하면 산림에 은거하다」했더니 공이 바로 그런 분이었던가? 공의 후손들이 행적의 인멸을 염려하여 묘비 세우기를 계획할새 어느날 공의 증손 태익(泰翊)이 나를 찾아와서 비문을 청하므로 내 그 재목이 되지 못하나 바로 나의 조부님의 재종형이 되시므로 그 행적을 들은 일이 어찌 오늘이리요 늘 잊지 않고 흠모해오던 바이라. 이에 간추려 옮기고 명한다,

아늑하고 수려한 봉계리에서 한 생에 도학군자로 자적하셨네.

다시 그 집을 돌아다 보니 청백하고 예범있는 가풍이었네.

고결한 풍도에 스민 덕기는 그윽하게 아득하게 풍기는 구나.

아름답고 고귀한 그 자취를 거듭 높이 높이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