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옹(東山翁) 하필원(河必遠)20세손

진주 동쪽 월아산 원앙동은 처사 하공의 연고지이다. 그 후손 치관(致灌), 치원(致源), 기호(祺鎬)가 문중 어른들의 명을 받아 책임을 맡고 공의 비문 지어주기를 청하는지라 감히 사양할 수가 없었다.공의 휘는 필원이요 자는 치중이요 호는 동산옹(東山翁)이다. 공은 1653년에 합천 야로 돈평에서 태어나셨는데 만년에 진양군 진성면 월아산 아래 동산방(東山坊)에 이사하여 사셨으므로 스스로 호를 동산옹(東山翁)이라 하였으며 1717년 3월 11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65세였다.공은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기개가 활달하여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자제 교육과 종족(宗族)을 대우함과 종을 부림에 있어 모범되게 하셨으며 의(義)를 좋아하고 재물을 탐내지 않으셨으니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입은 바이다. 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군자(君子)는 착실해야 하느니 글을 쓰되 말만을 숭상하는 자는 추하다 하더라」고 하셨다.

하씨의 본관은 진양인데 선대에 경재(敬齋)선생 문효공 휘 연(演)이 계시어 조선조(朝鮮朝)의 명상(名相)이 되셨고, 문효공의 5세손 휘 혼(渾)은 호가 모헌(暮軒)인데 익위사세마였으며 승정원 좌승지로 증직되셨는데 공의 증조이시다. 조부의 휘는 경량(景量)인데 통덕랑이요, 선고(先考)의 휘는 진명(晋明)인데 호는 왕암(汪庵)이다. 선비는 서산정씨(瑞山鄭氏)인데 선무랑 흡의 따님이요, 배위(配位)는 진양강씨(晋陽姜氏)인데 부덕을 지니셨으며 묘는 공의 묘 아래쪽 해좌(亥坐)에 있다. 4남1녀를 두셨는데 아드님은 휘 세권(世權), 세경(世經), 세위(世緯), 세장(世章)이요, 따님은 재령 이덕창(李德昌)에게 출가하였으며, 손과 증손은 번성하여 많으므로 기록하지 않는다. 이에 명(銘)한다.

글이 착실하지 못하면 군자가 매우 부끄러운 일이요

내가 명장(名章)을 지으나 아름다움이 차서 넘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님 말씀은 이미 간결하였으며 이 또한 공의 뜻이로다.

진강 하겸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