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은공(洛隱公) 하극성(河極成)선조님의묘소 : 경남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

낙은공(洛隱公) 하극성(河極成)19세손

취성 서쪽 신촌리 이목골 갑좌의 쌍봉은 옛 용양위(龍양衛) 사과(司果) 수 가선대부 낙은(洛隱) 하공과 배위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무덤이다  모든 후손들이 비석을 세우려 하여 우용(宇容)군이 가장(家狀)을 갖고 나를 찾아와 비문 청하기를 매우 간절히 하므로 사양하지 못하고 살펴 쓰노라 공의 휘는 극성(極成)이요 자는 성호(成昊)인데 진양인이다, 고려 사직 휘 진(珍)으로부터 비롯되어 대대로 벼슬하였으며 영의정 문효공(文孝公) 경재 선생에 이르러 더욱 크게 현달하였는데 이 분이 공의 7대조이다 증조님은 취수(取水)인데 주부이요 조부님은 응익(應益)이요 황고는 입(입)인데 종사랑이며 선비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공의 문의(文義)(현청원군 현도면 우록리)로부터 처음으로 취서(취西)에 옮기어 왔는데 관유(寬裕)하고 청검(淸儉)하며 온아하고 정직한 데다 큰 뜻이 있었다. 비록 무반(武班) 출신이나 마음 속엔 경학(經學)을 두어 그의 자경시(自警詩)에서 이르기를「하늘이 백성에게 타고나게 할 때 성품은 고른데 혹 물질에 구애하여 새롭게 되지 못하네 도에 드는 것은 성경(誠敬)으로 됨을 꼭 알아서 힘써 나아가면 어찌 성인 되기 어려우리?」하였다. 효성이 독실하여 어버이 돌아가심에 여묘살이를 하였다.1581년 2월 15일에 태어나서 1677년 10월 16일에 돌아가시니 춘추가 97세였다. 부인 경주김씨는 성운(聖運)의 따님인데 1582년에 태어나서 1679년 11월 10일에 돌아가셨다. 아드님은 한기(漢起)요 손자는 필성(弼城) 필주(弼周)요 증손은 진발(進發) 진원(進元) 진철(進哲)이다 이에 명(銘)한다

평생에 거택함은 오직 덕을 닦음이었으니

뿌리가 깊고 가지가 무성하여 그 아름다움 면면히 흘렀네

복은 길함은 만났으니 즐겁다

이 언덕이여! 비석은 이지러짐 없이 천년토록 말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