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부도사 휘(諱) 우청(遇淸)선조님의 묘소 :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삼막

의금부도사공(義禁府都事公)하우청(河遇淸)17세손

신흥 안양 삼막동의 첫 산등성 학무봉(鶴舞峯) 아래 간좌의 언덕은 선조 때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진양 하공의 무덤이다. 묘에 옛날 비석이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 되어 이지러졌으므로, 지금 모든 후손들이 고쳐 세우려 하여 공의 20대손 한용(漢容)이 문중 어른들의 명으로 나에게 비문을 청하니, 내 비록 그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나 족의(族誼)가 있는 바에 감히 사양할 수 없는 일이로다. 삼가 살피옵건대, 공의 휘는 우청(遇淸)이요, 호는 낙선재(樂善齋)이다.

고려 사직 휘 진(珍)이 시조이신데, 복을 후세에 전하여 그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9세손 휘 즙(楫)에 이르러 호를 송헌(松軒)이라 하였는데, 작위가 대광보국숭록대부 진천부원군(晋川府院君)이며, 시호가 원정공(元正公)이시다. 원정공이 휘 윤원(允源)을 낳으시니, 호가 고헌(苦軒)인데, 대광보국숭록대부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지셨다. 부원군께서 휘 자종(自宗)을 낳으시니 호가 목옹(木翁)인데 봉익대부 병조판서로 좌의정에 증직되셨고, 좌의정이 휘 연(演)을 낳으시니, 호가 경재(敬齋)인데 대광부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오르시어 문효공(文孝公)이라는 시호를 받아 문종묘(文宗廟)에 배향되고 다섯 서원에 봉향(奉享)되었으며 충효문의 정려(旌閭)를 받으셨다. 문효공이 휘 우명(友明)을 낳으시니, 호가 연당(蓮塘)이요 작위가 동지중추부사인데, 당대에 효자로 봉해져서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상세히 실려 있고 신천 서원에 배향되었다. 부사공이 휘 철행(哲行)을 낳으시니 옥과현감(玉果顯監)이요, 현감공이 휘 영호(永浩)를 낳으시니 충순위(忠順衛)요, 충순공께서 휘 응령을 낳으시니, 이 분이 공의 아버님이다. 이처럼 집안이 여러 대로 벼슬하여 면면히 이어졌다. 어머님은 서산 정씨(瑞山鄭氏)인데 언좌(彦佐)의 따님이다.

공께서 1561년에 출생하여 1622년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62세였다. 어릴 적부터 기재가 높고 도량이 컸으며 용기와 지혜가 남달랐으나 직위가 공의 덕방에 합당하지 못하여 끝내 낮은 대부(大夫)에서 그쳐 한(恨)될 것 같으나, 집안에 거하며 효우하여 이것이 저절로 치평(治平)의 근본이 되었으니, 어찌 꼭 정치를 해야만 한다 하리요? 배위는 공인(恭人) 밀양박씨(密陽朴氏)요 희명(希命)의 따님인데, 1562년에 출생하여 1624년 2월 29일에 돌아가셨으며, 묘는 합봉이다. 아드님 천남(天南)은 통덕랑이요, 손자는 득량(得良)이요, 증손은 태엽(泰曄), 준엽(俊曄), 준명(俊命)이다.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아! 공의 시대가 오래 되어 문적이 인멸하여 전해지지 못한 것은 난리를 겪고 집이 화재를 입은 때문이라 한다. 이 일을 시종 주관한 사람은 공의 후손인 상일(相一). 상표(相杓). 상순(相舜). 상국(相國). 경용(慶容)이다. 이에 명(銘)한다.

충효의 유품을 받아 인선(仁善)의 실공(實功)을 쌓으셨네.

돌에 새겨 표시하노니 산수(山水)와 더불어 무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