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략장군(宣略將軍) 하희수(希壽)16세손

공의 휘는 희수(希壽)요 자는 기수(耆수)요 호는 묵정(默亭)인데 선략장군(宣略將軍)에 봉해지셨다. 1512년 10월 17일에 태어나서 시(詩)와 예(禮)를 숭상하는 집안에서 생장하였고 사부(師父)의 가르침에 젖어 옛 성현의 도를 흠모하심으로 세상 사람들이 추앙하는 바 되었다. 효우(孝友)로써 가통(家統)을 지키고 청개(淸介)함으로 몸을 다스리어 이연(怡然)히 스스로 즐거워하며 명리(名利)를 구하지 아니하셨다.

1571년 7월 11일에 돌아가시어 합천 야로현(冶爐縣)의 자경산(自警山)밑 가남불(加南佛) 첫 등성이 술좌(戌坐)에 묻히시니 낙암(洛庵) 허부양(許復陽)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쓰기를「말쑥한 참된 기운과 충효의 가통(家統)으로 큰 공업(功業)이음을 시종여일 이루셨고, 이연(怡然)히 분수에 만족해 하여 높은덕을 퍼시었네. 이에 명(銘)을 새겨 표시하노니 산과 물같이 다함 없으리」라 하였다.

마나님 영인(令人)경산 전씨(慶山全氏)는 참판(參判) 연(璉)의 따님이요 문평공(文平公)백영(伯英)의 4세손인데 성품이 엄정하고 법도가 있어 시부모님이 일찍 규범(閨範)을 칭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