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랑 휘(諱) 극추(克秋)선조님의 묘소 : 경남 거제시 신현읍 상동리 산 57번지

장사랑공(將仕郞公)하극추(河克秋)16세손

살피건데 하씨의 시조는 고려 정종 문종조에 시작되었으며 그로부터 16세에 이르기까지 분파(分派)되어 모두 알 수 없으나 오직 우리 중조이신 휘 극추(克秋)께서 해남으로부터 거제로 이주 하였으니 통덕랑공 휘 숭리(崇理)의 삼자이며 현감공 휘 주(澍)의 손이요 공조참의공 휘 금(襟)의 증손이며 대사간 공 휘 결(潔)의 현손이다 대사간공은 세종 문종조 영의정이신 문효공 휘 연(演)의 아우이시다  선종의 위업이 어찌 후손에 긍지며 자랑이 아니리요? 중시조에 이르러 처음으로 남으로 이거하였으니 서울은 먼데 호남은 어디있는가? 이 땅에 흩어져 살아 온 지 십수 세(十數世)에 문벌의 유래는 상세히 알 수 없고 여러대의 내력을 옛것을 기준하여 현재까지를 기록함은 선조의 위업에 미치지 못하였기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도다. 비록 글로써 사실은 기록하여 그 유적을 말함이 선대를 소명(昭明)하게 하여 후세를 이을 뿐이다

옛날에 명윤(明允)의 소목(蘇木)과 자산(子山)의 유장(庾掌)이 서로 이어져 살았는데 이 두 사람은 오직 영구한데 세계(世界)를 잊을까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선세(先世)를 추모하는 정성을 소홀히 하여 후손들에 누를 끼치게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세계(世界)를 다음 세대에 증명함은 오직 비문을 새겨 비석을 세우는 일이 증거가 됨을 기대한다. 끝으로 13세손 석준(錫準)이 그 뜻이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지금 다행히 종원이 협의하여 적은 정성을 모아 후세에 남기고자 비를 세운다, 우리 자손중 다행히 고견이 있으면 더욱 보수할 것이다 비석에 새기노니 계산(鷄山)과 용강(龍岡)이 높고 또한 넓으며 호남에서 생장하여 영남에서 별세하시니 공께서는 길이 편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