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공(醒塘公) 하종군(河從君)15세손

 

공의 휘는 종군(從君)이요, 자는 갑여(甲汝)요, 호는 성당(醒塘)이요, 성은 하씨인데 본관은 진양이다. 조상의 연대가 멀거니와, 사직공 휘 진의 후손이시다. 현귀한 고관이 대대로 이어져 휘 즙(楫)에 이르러는 진천부원군으로 봉(封)해지시고 원정공(元正公)이란 시호를 받으셨으며, 그 아드님 휘 윤원(允源)께선 진산부원군에 봉해지시고 호를 고헌(苦軒)이라 하셨으며, 고헌 선생 아드님 휘 자종(自宗)께선 좌의정이셨는데 호를 목옹(木翁)이라 하시었다. 목옹 선생께서 다섯 아드님을 낳으셨는데 휘 왕은 군사(郡事)시었고, 휘 형(泂)은 군수시었다. 휘 연(演)께선 영의정을 지내시고 문효(文孝)라는 시호를 받으시었다. 휘 결(潔)은 대사간(大司諫)이셨다. 휘 부(溥)께선 영의정으로 증직되시었다. 공은 군수공의 증손님이시다. 조부님 휘 소의는 홍문관 교리(校理)시었다. 선고님 휘 곤(混)은 군수시었다.

선비님은 능성 구씨(綾城具氏)이신데, 중종 무자년 곧 1528년 3월 2일에 공을 재령군(載寧郡) 관아에서 낳으시었다. 공께선 성품이 효우(孝友)스러우시고 총직하시어, 부모님 봉양에 마음과 몸을 다 편하시게 하셨으며, 병환에 얼음 밑의 잉어를 구한 이적(異蹟)을 이루시었고, 돌아가심에 여묘(廬墓)살이의 정성을 다하셨으니 이는 부모님 섬기심의 대략이다. 장사랑(將仕郞)에 제수되시어 소윤(少尹)에 이르셨으니, 이는 벼슬길의 차례이요 재령(載寧)에서 나시어 정읍(井邑)에 옮으시고 진주(晉州)로 돌아가셨으니, 이는 옮아 다니신 전말(顚末)이다. 1596년 11월 20일에 돌아가시어 연당(蓮塘)의 뒷산 을좌에 묻히시었는데, 후에 좌찬성으로 증직되시었다.
마나님 정부인(貞夫人) 전의 이씨(全義李氏)께선 공을 받드심에 덕에 어긋남이 없으시었거니와 공께서 돌아가심에 성복(成服)을 마치시고 따라돌아가시어 공과 합봉되시었다. 아드님 휘 연해(連海)는 호군(護軍)이셨다. 손자님 휘 계종(繼淙)께선 좌윤(左尹)으로 증직되시었다. 증손자님 휘 태홍(台弘)께선 현령을 지내시었고, 휘 태봉(台奉)께선 참찬에 증직되시었다. 공의 따님께선 찰방(察訪) 정복일(鄭復一)님에게 출가하시었다. 공의 후손 장호(檣鎬). 장필(檣泌)님이 내게 찾아와 공의 비문을 청하므로, 사양하지 못하고 행장에 의거하여 이와 같이 쓰고 이어 명(銘)한다.

효성스럽도다 대부(大夫)시여! 능히 천도를 지키시도다.

마나님 따라돌아가시니, 열렬한 빛이로다.

연당의 동편에 넉 자 무덤 있으니,

3백년의 유풍(遺風)이 더욱 길이 전해지리.

지나가는 사람이여, 수레를 멈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 비석을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