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호(河仲浩) 14세손 선생의 휘는 중호(仲浩)요 벼슬은 조봉대부(朝奉大夫)예빈시 판관(禮賓寺 判官)이다 문효공 할아버님의 둘째 아드님이신 좌랑공 휘 제명(悌明) 할아버님의 외동 아드님이시다 단종(端宗)이 물러남에 따라 아버님 좌랑공 (佐郞公)께서 식음을 끊고 돌아가시니 공이 몰래 영월(寧越)땅에 들어간일로 많은 고초를 겪다가 뜻을 펴보지도 못한채 돌아가셨는데 당시의 사정으로 사관(史官)들은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야사(野史)를 쓰던 창계공(滄溪公)이 양세(兩世)의 충절을 기록하여 숨겨 전하여 졌다 마나님 영인 (令人) 강릉 함씨(江陵 咸氏)는 문희공(文僖公) 우치(禹治)의 따님이요 정평공(定平公) 부림(傅霖)의 손녀이시다 장남 휘 윤문(潤文)은 판관이었는데 함경도로 귀양가신 뒤 소식이 끊어졌고, 차남 휘 한문(漢文)은 한성 좌윤(漢城左尹)을 지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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