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금위 휘(諱) 철년(哲年) 이하 6위 선조님의 제단비(祭壇碑)   경남 창녕군 남지읍 두곡


 
내금위공(內禁衛公)하철년(河哲年) 14세손

譯文                           
연당공 휘우명(友明) 할아버님의 셋째아들이다 내금위(內禁衛)를지냈다 세종때의 어진정승 문효공(文孝公)의 손자 내금위(內禁衛) 휘 철년(哲年)의 묘소가 인천 소래산 학동 자좌(蘇萊山 鶴洞 子坐)에 모셔졌었는데 임진왜란 이후로 실묘(失墓)하여 성묘 드리지 못 한지가  3백년이 된지라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창녕군 남지 성군산밑 재실 뒷편에 단비(檀碑)를 세워서 제사 지낼 곳을 삼으려 할 때 재천(在千)과 재만(在萬)이 그의 일가 세종(世鍾)이 기록한 행장을 가지고 와 나에게 글을 청하니 내 선대의 우의(友誼)가 막중 하였음을 생각하면 사양 할 수 없는터이라 삼가 살피옵건데 공의 휘는 철년(哲年)인데 진양인(晉陽人)이다

황고(皇考)의 휘는 우명(友明)이요 호는 연당(蓮塘)이다 선비(先비) 정부인(貞夫人)은 순천박씨(順天朴氏) 판윤(判尹) 가권(可權)의 따님인데 부덕(婦德)이 있었다 공께선 태어나면서 부터 모습이 준수하고 의표(儀表)가 고매(高邁)하여 학문에 마음을 쏟을뿐 벼슬길에 나가려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일생을 마치셨다
배위는 공인(恭人) 고성이씨(固城李氏)요 3남을 두었는데 한종(漢宗)은 첨사요 한숭(漢嵩)도 첨사요 한근(漢近)은 통정 대부다 한종의 아드님 숙(淑)은 승의랑이요  호(浩)는 조졸(早卒)하였고  소원(昭元)은 통덕랑이다 한숭의 아드님은 필(泌)이요 한근의 아드님은 세청(世淸)이다 증손 현손은 다 기록하지 않는다
이에 명(銘)한다

고매한 모습 큰 영기 지니시니 어진 정승 손자시라

3백년이 지났어도 유풍은 남아 있네

우연히 묘소를 잃어 자손들이 애달파 하여

자손들이 사는곳에 단을 베풀어 비석을 세웠네

제사를 받들매 신령과 사람이 화합할지니

양양(洋洋)히 오시는 이곳 억만 년이나 전하여지리
사직공 14세손 내금위공 이하 6위를 설단하여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