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옹공 선조님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산 97-2

贈左議政 하자종(河自宗) 11세손
 

선생의 휘는 자종(自宗)이요 자는 여장(汝長)이며 호는 목옹(木翁)이시다 진양하씨 사직공(珍)의 11세 후손이시다 선생은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고헌(苦軒 允源)공의 둘째 아드님이시고 1350년 진주 이구산(尼丘山) 밑 여사촌(餘沙村)에서 태어 나셨다

1367년에 진사를 거쳐 문과에 나가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하시어 사온직장이 되셨으며 사헌부 지평과 이조정랑 판 서운관사 형조의 좌우참의를 역임하셨다
1379년에 가선대부 형조참판에 임명 되시고 1381년 황해도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에 임명되셨다
1383년 1월에 공안부윤(恭安府尹)에 임명 되셨으나 부임하기 11일 전에 모친상을 당하시어 상복을 벗으신 후 1385년에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임명 받으셨다
그 이후 1387년에 병조판서에 임명 되셨으나 나아가지 않으셨다 그때 나라일이 혼란스러웠으므로 외직(外職)을 청하여 청풍군사(靑風郡事)가 되셨지만 겨우 2년만에 병을 핑계로 물러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으셨다

통정 강회백(姜淮伯)이 차운(次韻)하기를

흰 머리를 자주 거울에 비추다가 산에 돌아와 비로서 은거 하셨네

거취에 미혹함은 허다한 일이오 시종일관은 드문 일이라

이미 도연명(陶淵明)의 곧은 뜻을 담았으니 어찌 가의(賈誼) 상소(上疏)의 뜻 품었으리요?

서로 바라봄에 오직 눈물 뿐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인지라

라 하였으니  이로써 처세하신 바 큰 절개를 볼 수 있다

송악(松岳) 옛집이 오래 되어 낡고 정원이 황폐하였으며 연못의 물만 가득한지라 선생이 서글픔을 못이겨 다시 수리하여 영모재(永慕齋)라 하고 한 구절 시를 지으시기를

        "한채의 초가집이 작은 山을 의지 한바.

        남쪽을 향했기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에 서늘하네.

        공경스레 수리하여 후손에게 물리니.

        유유한 사모의 정 그지 없이 솟아 오르네."

하시니 제현(諸賢)들이 다투어 차운(次韻)하였다 또 사직 최저(崔渚)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여 병풍을 만들어 선대의 검소한 덕풍을 드러내시고 또 자손에게 경계시키시되 비록 고쳐 짓게 되더라도 반드시 옛 법을 지켜 사치스럽게 하지 말라 하셨다

풍천군사(豊川郡事)가 되셨을 때와 중국에 사신가셨을 때 에 원정공(元正公)께서 시를 보내신 일이 있었고 나주와 충주 목사로 계셔서는 다스림이 밝아 관리는 따랐고 백성은 편안하였다

그후 전라도 경차관(敬差官) 안산군사(安山郡事)를 역임 하셨는데 벼슬을 사직하고 돌아오신 후로는 세상 일에 뜻을 두지 않아 만사를 잊고 마음을 안정하게 하시며 삼가 옛법을 지키셨다
여러 아드님들이 한양에서 벼슬하심으로 부터 돈의문(敦義門)밖에 사시니 선생의 연세는 82세요 마나님 정씨 (鄭氏)는 85세였다
등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으나 고령인데도 강녕하셨다
구경당(具慶堂)에서 자제분들에게 극진히 봉양을 받으시고 꽃피는 좋은날에 매양 장수를 하례하는 술잔을 받으셨으니 벼슬아치들이 모두 탄복
 하여 세상에서 듣기 어려운 경사라 하였다

교은 정이오(鄭以吾)가 먼저 시를 지어 축하 하고 이름난 선비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와 운(韻)을 나누어 그 일을 노래하니 모두 28편이나 되었다
부윤 윤회(尹淮)가 구경당 서문(序文)를 지으니 이때가 1431년이다

같은해 6월 23일 선생의 부인이신 정경부인 정씨가 돌아 가셨다
부인이 돌아가시고 2년후 1433년 12월 12일 선생이 돌아 가시니 향년 84세였다
묘소는 양주군 풍양면 팔현리(豊壤面 八賢里)곤좌(坤坐)에 있다

그이후 1447년 아드님 연(演)의 귀현(貴顯)으로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 영경연 관상감사에 증직(贈職)되셨는데 1451년에 셋째 아드님 영의정 연(演) 넷째 아드님 첨중추원사(僉中樞院事) 결(潔)께서 형제들과 유상(遺像)을 응석사(凝石寺) 영당(影堂)에 봉안하시니 내외 친척들이 향화료(香火料)를 모아서 보장고(寶藏庫)를 만들고 서로 시를 지어 그 사실을 기록 하였다

셋째아드님이신 영의정부사 연(演)의 시가 두편 넷째 아드님 중추원사 결(潔) 조카 창녕 현감 척(滌)의 시가 각각 한편 씩이요 또 완역재 강석덕(姜碩德) 돈령부사 동부승지 강맹경(姜孟卿) 이명신(李明晨) 동부승지 이계전(李季甸) 우찬성 정분(鄭분) 좌의정 황보인(皇甫仁) 판서 정인지(鄭麟趾) 우찬성 절재 김종서(金宗瑞) 죽계 안숭선(安崇善) 등의 시가 각각 한 편씩인데 모두 벽에 걸었다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256년이 되던 1688년에 여러 후손께서 묘 아래 모여 위토(位土)가 사점(私占)된 것을 찾아 비석 세우기를 의논하였고 1702년에 후손 시도(始圖)께서 비문을 지으시고 철(澈)께서 입석(立石)하시고 주부 섭(涉)께서 글씨를 쓰셨으며 원근의 선비들이 사당에 제사하는 글을 지었다

 

 

선생의 묘역(墓域)은 당초 경기도 양주군 주래면 작동(지금의 광릉이 있는곳)에 모셔졌다고 전한다.  이후 왕명으로 이 산 전체가 세조의 광릉(光陵)예정지가 됨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분묘가 이장 될때 선생의 묘지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면 팔현리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면 팔현리 산 97-2

 

아래의 詩는 獨谷(성성린)선생 문집에서 발견한 詩이다
목옹공선조님과 연관된 詩로 밑에 시번역은 제가 성균관 홈페이지 게시판에 번역을 부탁 드렸는데 성균관에.김정곤씨 께서 번역을 해주셨다.

붓을 놀려 諸公의 시에 次韻하다.

황해감사 河自宗을 餞送하며

 

원문

人固有願爲漁師。

日與鷗鷺相追隨。

魚蝦換酒蓬底醉。

疑乃聲中無所思。

願爲卿相得行道。

致君澤民心自期。

羨侯少抱經濟志。

攬轡慷慨遭淸時。

번역

사람이 정녕 어부를 원할까

날로 갈매기와 짝하네.

고기로 술 바꿔 봉래아래 취하니

이는 명예에 뜻이 없음일세.

원컨대 재상의 도를 터득하시어

백성의 윤택함을 기약하소서.

선망하는 경세의 뜻 품으시고.

고삐를 당기어 태평성대를 맞으소서.


목옹공 선조님을 모신 발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면 팔현리

 

두문동(杜門洞)72현


고려대전 충신각에 봉안된 목옹공(自宗)선조님위패
 

1.두문동 [杜門洞]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光德山) 서쪽에 고려왕조의 충신들이 모여 살던 곳.
이성계(李成桂)의 조선건국(朝鮮建國)에 반대한 고려의 유신 신규(申珪) 등 72인은 개성 남동쪽에 있는 이른바 ‘부조현(不朝峴)’에 조복(朝服)을 벗어 던지고,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신왕조(新王朝)에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이에 이성계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72명의 고려 충신들을 몰살하였는데, 후일 정조(正祖)때, 표절사(表節祠)를 그 자리에 세워 그들의 충절(忠節)을 기렸다.

2.두문동 칠십이현 [杜門洞七十二賢]
조선의 개창에 반대해 두문동에서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바치며 지조를 지킨 72명의 고려 유신(遺臣)을 이르는 말.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으로, 칠십이현이 모두 이곳에 들어와 마을의 동 ·서쪽에 모두 문을 세우고는 빚장을 걸어놓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후세에 절의의 표상으로 숭앙되었고, 1783년(정조 7)에는 왕명으로 개성의 성균관(成均館)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배향하게 하였다.

3.고려수절신 [高麗守節臣]
조선이 개국된 시기를 전후하여 유학(儒學)의 대의명분론을 내세워, 왕씨(王氏) 고려에 충성을 하고 새로 개국한 이씨(李氏) 조선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은 학자.이들은 고려 멸망 전 은둔생활을 하며,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반대하다 살해되기도 하고, 조선 개국 후에는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이름이 전하는데, 전부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 것은 아니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은 사람들도 있다. 수절신으로는 다음의 이름들이 들어 있다.


성 명 .자. 호. 본관


( 1 ) 정몽주 ( 鄭夢周 ) : 달가 ( 達可 ) , 포은 ( 圃隱 ), 연일 ( 延日 )

( 2 ) 김 주 ( 金 澍 ) : 택부 ( 澤夫 ), 농암 (籠巖 ), 선산 ( 善山 )

( 3 ) 이존오 ( 李存吾 ) : 순경 ( 順卿 ), 석탄 ( 石灘 ), 경주 ( 慶州 )

( 4 ) 정 추 ( 鄭 樞 ) : 공권 ( 公權 ), 원재 ( 圓齋 ), 청주 ( 淸州 )

( 5 ) 최 양 ( 崔 瀁 ) : 계함 ( 季涵 ), 장육당 (藏六堂 ), 전주 ( 全州 )

( 6 ) 길 재 ( 吉 再 ) : 재보 ( 再父 ), 야 은 ( 冶隱 ), 선산 ( 善山 )

( 7 ) 남을진 ( 南乙珍 ) : - - 의령 ( 宜寧 )

( 8 ) 임선미 ( 林先味 ) : 양대 ( 養大 ), 휴암 ( 休庵 ), 평택 ( 平澤 )

( 9 ) 원천석 ( 元天錫 ) : 자정 (子正 ), 운곡 ( 耘谷 ), 원주 ( 原州 )

(10) 조의생 ( 曹義生 ) : - 원촌 ( 遠村 ), 창령 ( 昌寧 )

(11) 맹 유 ( 孟 裕 ) : - - 온양 ( 溫陽 )

(12) 도 응 ( 都 膺 ) : 자예 (子藝 ), 청송당 (靑松堂 ), 성주 ( 星州 )

(13) 이사지 ( 李思之 ) : - 려은 ( 麗隱 ), 경산 ( 京山 )

(14) 도동명 ( 陶東明 ) : - 쌍회 ( 雙檜 ), 풍양 ( 豊壤 )

(15) 김자수 ( 金自粹 ) : 순중 ( 純仲 ), 상촌 ( 桑村 ), 경주 ( 慶州 )

(16) 장안세 ( 張安世 ) : - - 옥산 ( 玉山 )

(17) 정 광 ( 程 廣 ) : 건천 (巾川 ), 담양 ( 潭陽 )

(18) 한철충 ( 韓哲沖 ) : 몽계 (夢溪 ), 청주 ( 淸州 )

(19) 국 유 ( 鞠 유 ) :

(20) 나천서 ( 羅天瑞 ) : 정백 ( 定伯 ),

(21) 성 부 ( 成 溥 ) : 창령 ( 昌寧 )

(22) 이명성 ( 李明成 ) : 공주 ( 公州 )

(23) 이 색 ( 李 穡 ) : 영숙 ( 潁叔 ), 목은 ( 牧隱 ), 한산 ( 韓山 )

(24) 정 지 ( 鄭 地 ) : 나주 ( 羅州 )

(25) 하자종 ( 河自宗 ) : 목옹 (木翁 ), 진주 ( 晉州 )

(26) 이양중 ( 李養中 ) : 자정 ( 子精 ), 석탄 ( 石灘 ), 광주 ( 廣州 )

(27) 김진양 ( 金震陽 ) : 자정 ( 子靜 ), 초옥자 ( 草屋子 ), 경주 ( 慶州 )

(28) 안 성 ( 安 省 ) : 일삼 ( 日三 ), 설천 ( 雪川), 泉谷 광주 ( 廣州 )

(29 ) 이사경 ( 李思敬 ) : - 송월당 ( 松月堂 ), 전의 ( 全義 )

(30) 조충숙 ( 趙忠肅 ) : 경부 ( 敬夫 ), 덕곡 ( 德谷 ), 함안 ( 咸安 )

(31) 허 징 ( 許 徵 ) : 양천 ( 陽川 )

(32) 최문한 ( 崔文漢 ) : 강릉 ( 江陵 )

(33) 서 견 ( 徐 甄 ) : 이천 ( 利川 )

(34) 신덕린 ( 申德隣 ) : 순은 ( 醇隱 ), 고령 ( 高靈 )

(35) 맹희덕 ( 孟希德 ) : ( 孟希道 ?: 호: 東涵. 본관: 新昌)

(36) 김약항 ( 金若恒 ) : 구경 ( 久卿 ), 광산 ( 光山 )

(37) 배상지 ( 裴尙志 ) : 백당 ( 栢堂 ), 흥해 ( 興海 )

(38) 이무방 ( 李茂芳 ) : 석지 ( 釋之 ), 남곡 ( 南谷 ), 영천 ( 永川 )

(39) 이 행 ( 李 行 ) : 주도 ( 周道 ), 기우자 ( 騎牛子 ), 여주 ( 驪州 )

(40) 변 숙 ( 邊 肅 ) :

(41) 김광치 ( 金光致 ) : 상주 ( 尙州 )

(42) 이종학 ( 李種學 ) : 중문 ( 仲文 ), 인재 ( 麟齋 ), 한산 ( 韓山 )

(43) 이양소 ( 李陽昭 ) : 여건 ( 汝健 ), 금은 ( 琴隱 ),杏亭 순천 ( 順天 )

(44) 민 유 ( 閔 楡 ) :

(45) 문익점 ( 文益漸 ) : 일신 ( 日新 ), 대비재 ( 大庇齋) 남평 ( 南平 ) 又號 三友堂

(46) 임귀연 ( 林貴椽 ) : 나주 ( 羅州 )

(47) 조희직 ( 曹希直 ) :

(48) 김사렴 ( 金士廉 ) :

(49) 김승길 ( 金承吉 ) :

(50) 조 유 ( 趙 瑜 ) :

(51) 김 제 ( 金 濟 ) : 백암 ( 白巖 ), 선산 ( 善山 )

(52) 조철산 ( 趙鐵山 ) :

(53) 범세동 ( 范世東 ) :

(54) 구 홍 ( 具 鴻 ) :

(55) 윤충보 ( 尹忠輔 ) :

(56) 성사제 ( 成思齊 ) : 창령 ( 昌寧 )

(57) 김충한 ( 金沖漢 ) :

(58) 유 구 ( 柳 王句 ) : 벽은 ( 碧隱 ), 진주 ( 晉州 ) .... ( 72현 ? )

(59) 박문수 ( 朴門壽 ) :

(60) 민안부 ( 閔安富 ) :

(61) 채왕택 ( 蔡王澤 ) :

(62) 송 교 ( 宋 皎 ) :

(63) 최칠석 ( 崔七夕 ) : 전주 ( 全州 )

(64) 차원부 ( 車原兆頁 ): 운암 ( 雲巖 ), 연안 ( 延安 )

(65) 김자진 ( 金子進 ) : 광산 ( 光山 )

(66) 조 윤 ( 趙 胤 ) :

(67) 김약시 ( 金若時 ) : 광산 ( 光山 )

(68) 정 온 ( 鄭 溫 ) :

(69) 이 연 ( 李 涓 ) :

(70) 송 인 ( 宋 寅 ) :

(71) 곽 추 ( 郭 樞 ) :

(72) 채귀하 (蔡貴河 ) : 다의당 ( 多義堂 )